이야기

독일 올해의 게임상 이야기

2017-05-27
351

2023년 독일 올해의 게임상 수상작이 발표된 것을 기념하여, 보드게임지 2017년 6월호에 실렸던 기사를 다시 가져왔다. 2023년에는 둘로 나뉘어 진행하던 시상식이 하나로 합쳐졌으며, 그 사이에 심사위원단의 구성이 바뀌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독일 올해의 게임상이 어떤 상인지를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없으리라 본다.
 
매년 5월이면 독일 보드게임 업계는 희비가 엇갈린다. 독일 올해의 게임상(Spiel des Jahres. 이하 올해의 게임상) 후보작에 이름을 올렸는가 그러지 못했는가에 따라서 게임이 판매되는 자릿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하면 그 게임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는 평소에는 게임을 안 사다가도 연말을 맞이하여 보드게임을 한두 개 정도만 사는 일반 대중이 게임을 살 때 고려하는 가장 큰 조건 중 하나가 ‘어떤 게임이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했는가’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독일 보드게임 업체는 올해의 게임상 후보작이 발표되면 수상 후의 주문 폭주에 대비한 생산량 조정을 준비한다.
 
현대 보드게임의 중심지인 독일에는 매년 수백 가지 게임이 시장에 등장하지만, 올해의 게임상을 받는 것은 그중 하나뿐이다. 올해의 게임상은 1979년부터 시작해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매년 게임 하나씩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올해의 게임상은 그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많은 보드게임 플레이어가 주목하는 대표적인 보드게임 상이다. 2017년 올해의 게임상 후보작이 발표된 것을 기념해 올해의 게임상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올해의 게임상의 역사
보드게임은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래된 놀이 문화이다. 바둑의 역사만 보더라도 기원이 언제인가 불분명할 정도로 오래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어떤 이에 의하면 중국의 전설 시대인 삼황오제 시절부터 기원했다고 할 정도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인들이 보드게임을 즐겼음은 기원전 3100년 경의 유물인 세네트를 봐도 알 수 있다.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보드게임 역시 발전해 왔다. 아니 애초에 게임이란 것은 보드게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비디오 게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1972년 아타리사에서 출시한 <퐁>을 시작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비디오 게임이 보급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해 나가면서 비디오 게임이 게임이란 말의 자리를 대신하게 됐고, 1980, 90년대를 거치며 보드게임의 입지는 전 세계적으로 축소돼 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보드게임이 여전히 발전해가고 있는 나라도 있었는데,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1980년대 이후 현대 보드게임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다시금 보드게임 부흥의 역사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부터 독일의 보드게임은 독일어권이 아닌 타 언어권에도 진출해 영향을 끼쳐, 비디오 게임에 밀려 영역이 축소되고 있던 보드게임을 되살리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독일이 보드게임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올해의 게임상이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이 상이 설립된 이후 소비자들은 게임을 구입하는 데에 있어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을 얻게 됐으며, 보드게임 업계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야 할 동기를 갖게 되어, 독일 보드게임 업계는 서서히 활력을 띠게 됐다.
 
매년 새로 나오는 게임 중에서 하나의 게임을 뽑아 보자는 아이디어는 1977년 독어권 게임 평론가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위르겐 헤르츠의 주도로 1978년 2월 뉘른베르크 완구 박람회 기간 동안 회합을 가졌고, 좀 더 구체적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 후 톰 베르넥의 자택에서 게임 작가와 평론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으며, 위르겐 헤르츠의 제안으로 ‘올해의 게임 Spiel des Jahres’이란 이름이 정해졌다. 매년 새로운 게임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중 뛰어난 게임이 분명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당시 독일의 보드게임 시장은 지금과 달리 대부분의 사람이 나인 멘스 모리스, 체커, 할마, 체스와 같은 고전 게임을 주로 즐기고 있었고, 새로운 현대 보드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였다. 이런 시류에서 고전 게임이 아닌 새로운 다른 게임을 대중에게 알리겠다는 것이 올해의 게임상의 설립 취지 중 하나이다.
 
초기 올해의 게임상 심사위원은 요헨 코츠, 하랄트 프리츠, 발터룩 하스, 디터 하셀블라트, 위르겐 헤르츠, 베른바르트 톨레, 톰 베르넥 7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모두 게임 평론가와 게임 기자였으며, 게임 제조사나 배급사와 아무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이뤄졌다. 이 원칙은 아직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어, 새로운 심사위원을 위촉할 때에도 적용되고 있다. 심사위원에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를 배제하는 원칙 덕분에 올해의 게임상은 지금까지 공정성에 대한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의 게임상 운영진들은 이 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를 업계의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독립된 존재였기 때문으로 꼽는다.
 
상이 제정된 후 10년간 심사위원들은 박람회 참관과 그에 따른 부대비용, 회동에 따른 비용, 시상식 운영 및 참석을 위한 경비,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통신 비용 등 모든 비용을 자기 부담으로 처리했다. 이런 식으로 운영에 있어서도 철저히 독립성을 유지해 공정성 유지에 힘을 썼다. 그 결과 서서히 영향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올해의 게임상 로고는 소비자가 믿고 살 수 있는 게임을 상징하게 됐고, 독일 보드게임 업체의 입장에서도 특별히 다른 광고 없이 올해의 게임상 로고를 게임 상자에 인쇄해 넣은 것만으로도 판매량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2023년 현재 올해의 게임상 심사위원단 - 올해의 게임과 숙련자 게임 부문
 
심사위원단은 올해의 게임상을 운영을 위해 기부를 비롯해서 어떤 형태의 자금 지원도 받지 않는다. 오직 올해의 게임상 로고를 제품 상자에 부착한 상태로 판매할 경우 그에 따른 로고 사용료를 받음으로써 운영비를 충당할 뿐이다. 이는 그리 큰 금액은 아니며, 수상작인가 후보작인가 추천작인가에 따라 로고 사용 기간과 금액을 차등적으로 메기고 있다. 하지만 게임 상자에 로고를 부착하지 않고, 전단지나 광고에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했음을 알리는 형태의 홍보에 대해서는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처음 10년간은 심사위원단 개인들의 비용을 처리할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의 임무와 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비용이 꾸준히 증가했고, 더 이상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이들은 1989년부터 로고 사용료와 같은 라이센스 모델을 적용해, 심사위원단의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심사위원단은 완전히 고정된 인원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 7~12명으로 이뤄져 왔는데, 현재는 올해의 게임과 숙련자 게임 부문은 심사위원 8명으로, 어린이 게임 부문은 심사위원 5명과 자문단 3명으로 이뤄졌다. 심사위원단이 적으면 한 개인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고, 일정 수를 초과하면 의사 결정의 질이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 인원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2023년 현재 올해의 게임상 심사위원단 - 어린이 게임 부문
 
심사위원단은 독일 각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항상 모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1년 중 정해진 때에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 공식적인 모임 기간은 다음과 같다.
 
• 2월 뉘른베르크 완구 박람회
• 5월 회동
• 6월 어린이 게임 부문 시상식과 7월 올해의 게임과 숙련자 게임 부문 시상식 (편집자 주: 2023년에는 어린이 게임 7월에 시상식을 함께 진행했다)
• 10월 에센 슈필
 
---------------------------------
올해의 게임상 심사위원 선정 기준
•정기 간행물, 인쇄 매체 또는 방송에서 게임 비평가로 활동한 적 있어야 함.
•정기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독자에게 피력해야 함.
• 명확하고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
• 심사위원에 대한 신뢰와 무결성을 보장하기 위해 게임 업계와 완전히 독립적일 것.
---------------------------------
 
 
후보작 선정에서 수상작 선정까지의 과정
심사위원단이 모일 때마다, 수상작 선정 과정이 진행된다. 이를 시간순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 10월 에센 <슈필>과 2월 뉘른베르크 <완구박람회> 직후의 회동에서 서로 발견한 게임에 대한 정보를 교환.
• 4월 초에 심사위원단은 각자 자신이 주목하고 있는 게임 20종의 목록을 만들어서 서로 공유함. 이렇게 해서 각자 자신의 목록에 없었던 게임을 다시 점검할 기회를 가짐.
• 4월 말에 각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았을 경우 자신이 후보작으로 골랐을 게임 5개를 선정.
• 5월에 3~4일간 회동을 하며,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각 부문별 최종 후보작을 3개씩 선정하고, 그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심사위원들이 추천하고 싶었던 게임들로 추천작 목록을 정함(추천작의 수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5~10개 사이로 정해짐).
• 5월 말에 각 부문별 후보작 3종씩과 추천작 목록 공개.
• 6월에 함부르크에서 어린이 게임 부문 수상작 발표.
• 7월에 베를린에서 올해의 게임과 숙련자 게임 부문 수상작 발표. (편집자 주: 2023년에는 어린이 게임 7월에 시상식을 함께 진행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게임은 올해의 게임상 로고가 달리지 않은 상태로 처음 시장에 등장한다(왼쪽). 하지만, 올해의 게임상 후보작이 발표되면, 독일 퍼블리셔는 그 즉시 패키지에 그 사실을 인쇄하며 자기네 게임이 후보작에 올랐음을 광고한다(가운데). 그리고 최종적으로 수상작이 결정되면, 다시 그 즉시 패키지를 바꾼다(오른쪽, 잘 보면 후보작인 상태의 로고와 수상작이 된 후의 로고가 다르다).
 
올해의 게임상 수상 기준
올해의 게임상 수상 기준에 대해서 어떤 항목은 몇 점이란 식의 채점 기준은 없다고 한다. 자동차처럼 엔진의 출력은 어떻고, 순간 가속력은 어떻고, 최고 속도는 어떻다는 식의 객관적으로 떨어지는 숫자로 게임을 측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가지 주의 깊게 보는 것들이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 독창성과 진정성이 있는가?
• 계속해서 게임을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가?
• 규칙을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썼는가?
• 게임 진행에 결함이 없고, 설득력이 있는가?
• (추상적인 게임이 아니라면) 게임 배경과 게임의 개념이 일치하는가?
• 게임 구성물이 게임 개념과 일치하는가?
 
하지만 이는 고려 대상일 뿐이다. 올해의 게임상 심사위원단은 각 항목 별로 점수를 매겨 가며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것에 대해 평가하기 때문에 ‘올해의 최우수 게임’과 같은 표현이 아니라, 게임 비평가들로 이뤄진 심사위원단이 선정한 상이란 뜻의 ‘Kriterpreis(비평상)’란 표현을 쓴다(올해의 게임상 로고 아래쪽에서 볼 수 있음).
 
게임상 수상 대상이 되는 게임은 어떻게 선정되나
우선 독일의 게임 매장에서 소비자가 살 수 있는 게임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1원칙이다. 매장에서 판매되는 것이 아닌 우편 주문이나 온라인 전용 게임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5월에 후보작을 발표하므로 게임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수 있게 늦어도 4월 전에 나온 게임들까지 검토 대상으로 삼는다. 즉, 2017년 올해의 게임상 후보작은 2016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독일 게임 매장에서 소비자가 살 수 있게 발매된 상태인 게임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것은 독일 퍼블리셔가 낸 게임에 한정하지는 않는다. 일례로 2011년 올해의 게임상을 받은 <쿼클>은 미국의 퍼블리셔인 마인드웨어에서 2006년에 낸 게임이다. 다만 독일 배급자인 슈미트가 2011년에 이 게임을 독일의 게임 매장에서 소비자가 살 수 있는 상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2006년에 발매됐지만, 2011년에 수상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올해의 게임상을 받은 게임이 최고의 게임인가?
심사위원단은 올해의 게임상을 받은 게임이 반드시 그해 최고의 게임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게임의 품질은 책이나 영화 등의 다른 문화 상품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특성에 의해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최고의 게임이란 항상 그것을 즐기는 사람 개인의 성향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리고 심사위원단은 다양한 층의 사람을 염두에 두고 게임의 우수성을 평가하는데, 숙련된 보드게임 플레이어 그룹보다는 가끔 게임을 하는 더 넓은 범위의 일반적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숙련된 보드게임 플레이어를 위한 게임은 이런 일반 소비자들에겐 지나치게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최고의 게임이란 항상 ‘내가 즐겁게 한 게임’이지 않을까?
댓글 (총 0 건)

12

/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