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게임 시스템 이야기 - 타일 놓기

게임 영역에 타일을 놓으며 게임이 진행된다면?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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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한 보드게임은 그 오랜 역사에 비례해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발전해 왔다. 이 다양한 게임들은 외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커다란 나무에서 여러 줄기가 뻗어나가는 것처럼 공통된 요소에서 분화되기도 했다. 게임 간에는 그 외양과 진행 방식이 유사한 것이 있는가 하면, 외양은 달라 보이지만 진행 방식은 유사한 것도 있고, 외양은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진행 방식은 딴판인 것도 있다. 이 코너에서는 바로 이러한 게임의 진행 방식을 가리키는 표현인 게임 시스템(혹은 메커니즘)이 유사한 게임들을 살피며, 게임 시스템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다.

 

 

타일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발견되는 타일

 

타일은 우리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발견되는 물건이다. 타일을 붙여 만든 화장실 벽이나 바닥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보도블록 역시 타일의 일종이다. 이렇듯 타일은 2차원 공간을 일정한 패턴에 따라 채워 넣는 데 사용된다. 보드게임에서도 타일이 사용된다. 보드게임에 사용되는 타일은 주로 두꺼운 종이에 인쇄된 것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플라스틱이나 나무로 만든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타일의 모양은 정사각형이 일반적이지만, 육각형이라거나, 정사각형이 여러 개 연결된 폴리오미노, 원형, 서로 맞물리는 톱니 모양 등 다양한 모양의 타일이 있다. 그 모양이 어떻건 간에 보드게임에서의 타일은 일상생활에서의 타일처럼 2차원 평면을 구성하고 채우는 데 주로 사용된다.
 

보드게임에 사용되는 각종 타일들

 

 

타일 놓기
타일 놓기(Tile Placement)란 말 그대로 타일을 놓으며 진행하는 게임 시스템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2차원 공간에 타일을 넓게 붙여가며 점점 커져가는 2차원 영역을 만들거나, 지정된 공간을 타일로 채워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타일이 2차원적 공간 중에 어디에 어떻게 놓여 있는가 하는 정보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타일을 놓는다는 구체적인 행위와 게임이 진행되면서 타일이 놓이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인다는 점이 다른 게임 시스템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이런 특징적인 공통점 안에서도 놓은 타일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게임마다 다른 모습을 띠기도 한다.
 
 
카르카손

 

타일 놓기를 활용한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카르카손>이 있다. <카르카손>에서 플레이어는 자기 차례에 타일 하나를 뽑고, 기존에 놓여 있는 타일에 그림이 연결되게 붙여놓는 식으로 진행된다. 타일의 각 변마다 성, 길, 밭 중 하나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전에 놓인 타일과 붙여 놓는 쪽의 변은 서로 같은 속성이어야만 한다. 타일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조합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해서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이 만들어지고, 여러 갈래로 길게 연결된 길이, 길과 성으로 구분 지어지는 밭이 만들어진다. 마치 지그소 퍼즐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식으로 놓건 간에 꽤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자기 차례에 타일을 놓은 뒤 그 타일 위에 미플(<카르카손>의 게임 말)을 올려놓을 수 있으며, 타일들로 인해 만들어진 각종 영역에서 점수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카르카손>에서는 특정한 지역이 만들어지는 모습이 타일을 놓는 행위를 통해 표현된다. 타일을 놓는 행위는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을 나타내며, 그 과정을 통해 게임의 영역이 확장된다. <카르카손>에는 별도의 판이 존재하지 않고 타일이 놓이는 게임이 진행되는 탁자 전체를 게임 영역으로 사용한다. 탁자 바깥에는 물리적으로 타일을 놓을 수 없으므로 탁자 안을 게임 영역의 한계로 삼기도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타일이 연결될 수 있는 조건만 맞다면, 그리고 타일만 충분하다면 게임 영역의 한계를 두지 않고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카카오

<카카오>는 여러 면에서 <카르카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게임이다. 게임 시스템뿐만 아니라 <카카오>에 사용되는 게임 말인 물지게꾼 말과 타일의 일꾼 표시는 <카르카손>의 미플과 똑같다. 이는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 <카르카손>의 퍼블리셔인 한스 임 글뤽의 동의 하에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플레이어가 타일 전체를 공유해서 사용하는 <카르카손>과 달리 <카카오>에서는 플레이어마다 각자가 사용할 일꾼 타일과 플레이어 전체가 공유할 카카오 농장 타일, 이렇게 두 종류의 타일을 사용한다. 플레이어는 자기 차례마다 일꾼 타일을 원하는 곳에 놓고, 그에 따라 정글 타일도 놓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일꾼 타일과 정글 타일은 체스판의 교차하는 흑백 모양처럼 서로 번걸아 놓여야 하며, 일꾼 타일 2개에 인접하게 된 빈칸이 생기면 그 자리에 바로 정글 타일이 놓이기 때문에, <카르카손>처럼 자유롭게 게임 영역이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약간은 정형화된 방식으로 게임 영역이 만들어진다.
 
카카오의 일꾼 타일은 <카르카손>의 미플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 일꾼 타일의 변에는 변과 인접한 정글 타일에 일꾼을 몇 명 제공하는지가 표시돼 있으며, 플레이어는 타일이 놓이는 순간 해당 일꾼을 사용해 정글 타일의 행동을 수행하고 그에 따른 효과를 받는다. 정글 타일과 인접한 변에 있는 일꾼의 수만큼 효과를 받기 때문에, 일꾼 타일을 어느 방향으로 놓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반면, 정글 타일은 변마다 다른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각 타일 종류마다 어떤 행동을 수행하는지가 결정돼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정글 타일은 어느 위치에 어떤 일꾼 타일과 인접해서 놓이는가만 중요할 뿐 어느 방향으로 놓였는가는 게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일꾼 타일로 인해 게임 내 발생하는 효과가 즉각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카카오는 매우 경쾌하고 빠르게 진행된다. <카르카손>과 같은 타일 놓기 시스템으로 묶이고 비슷한 외형을 지녔지만 카카오는 타일을 놓는 규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면서 <카르카손>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게임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마라케시

<마라케시>에서의 타일은 정사각형 종이 타일이 아니라 정사각형 2개가 붙은 직사각형 형태로 타일마다 게임판에서 2칸을 차지하며,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천 조각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마라케시>는 타일 놓기 시스템을 매우 독특하게 활용한 게임이다. <마라케시>에서 천 조각으로 된 타일을 사용한 것은 게임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게임 시스템적으로 의도된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타일이 서로 인접하게 연결되는 것뿐만 아니라, 타일 위에 타일을 겹쳐 쌓는 것이 가능하다. 종이나 나무와 같은 딱딱한 재질의 타일이라면 타일이 놓이는 두 칸의 높이가 다를 경우(예를 들어 이미 타일이 놓인 칸과 타일이 없는 칸에 걸쳐서 새로운 타일을 쌓는다고 할 때) 매우 부자연스럽게 놓여 결국 미끄러지거나 더 이상 그 위에 타일을 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되겠지만, 유연한 재질인 천 조각은 두 칸의 높이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타일 자체가 휘어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놓일 뿐만 아니라, 그 위에 또 다른 타일을 놓을 때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종이나 나무로 된 타일을 사용하는 게임 중에서도 타일 위에 다른 타일을 놓는 것이 가능한 게임이 있지만, <마라케시>처럼 자연스럽게 놓일 수 없으므로 타일 위에 새로운 타일을 놓을 땐 그에 따른 특수 규칙 등이 존재하는데, <마라케시>에서는 그런 번거로운 규칙 없이 타일 위에 새로운 타일을 놓아 아래 있는 타일을 덮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마라케시>에서는 모든 플레이어가 공유하는 게임 말인 아쌈이 자기 색깔의 타일을 밟지 않으면 안 되도록 이렇게 타일 위에 타일을 덮으면서 자기 색깔의 타일이 가능한 한 많이 노출되게 만들어야 한다. 다른 가게의 간판을 덮으면서까지 자기네 가게로 손님이 오도록 호객 행위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자연스럽게 겹쳐 쌓인 타일들

 

 

블로커스

<블로커스>의 타일도 정사각형이 아니다. 플레이어들 모두는 각자 자기 색깔의 타일 세트를 받는데, 이 타일 세트는 각기 다른 모양의 폴리오미노로 구성돼 있다. 같은 타일 놓기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무한히 펼쳐지는 <카르카손>과는 달리 <블로커스>에서는 20×20칸으로 나뉜 고정된 영역을 가진 게임판 위에 타일을 올려놔야 한다. 게임판의 칸은 폴리오미노 타일의 기본 단위가 되는 정사각형과 같은 크기로, 당연하게도 여러 칸으로 이뤄진 타일일수록 더 큰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 플레이어의 목표는 자기 타일을 가능한 한 많이 올려놓는 것인데, 이때 타일의 개수가 아닌 각 타일을 이루고 있는 정사각형 단위 칸을 더 많이 올려놓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이미 놓인 자기 타일과 꼭짓점만 맞닿게만 타일을 놓을 수 있으므로 게임이 진행되면, 플레이어마다 자기 타일을 올려놓을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이 갈리게 된다. 자기 타일을 올려놓을 수 있는 곳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들면서, 상대가 타일을 올려놓을 수 있는 곳을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다. <블로커스>는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차례마다 자기 것을 하나씩 판 위에 올려놓고, 자기 영역을 확보하는 게임이란 점에서 고전 게임 하나와의 공통성이 떠오를 것이다.
 

누가 더 많이 올려 놓았는지 확인할 때는 남은 타일을 세는 것이 더 편하다.

 

바둑은 타일 놓기 게임인가?
<블로커스>를 하다 보면 바둑이 연상된다.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바둑에서 사용하는 구성물을 다음과 같이 치환해 보자. 바둑판에서 줄과 줄이 만나는 눈 대신 줄과 줄로 둘러싸인 칸에 돌을 놓고, 돌이 원형이 아닌 정사각형이라고 상상해보라. 플레이어는 각자 번갈아가며 판의 칸을 채울 것이고, 이렇게 해서 자기 돌로 둘러 싼 자기만의 영역을 만드는 꼴이 된다. 위에서 본 타일 놓기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한 번 놓은 돌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으며, 돌을 어디에 놓았는지의 정보가 게임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비록 바둑돌은 전형적인 타일과는 매우 다르게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러 가지 점에서 타일 놓기 시스템을 이용한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바둑의 오랜 역사를 감안하면 거꾸로 바둑이 수많은 타일 놓기 게임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의심해볼 수도 있다.
 

 

 

장기는 타일 놓기 게임인가?
바둑이 타일 놓기라면, 역시 또 다른 고전 게임인 장기도 타일 놓기냐는 물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기는 타일 놓기에 속하지 않는다. 모두 알다시피 장기는 게임 말 모두가 장기판에 올라간 상태에서 게임을 시작하지, 게임이 진행되면서 타일이 놓이듯 게임 말이 추가되지 않으며, 심지어는 게임 말이 점차 장기판 위에서 사라져 간다. 그리고 놓인 말이 그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차례마다 게임 말 하나는 어딘가 다른 위치로 움직여야만 한다. 이는 앞서 바둑에서의 상상처럼 장기 말을 정사각형으로 바꾼 채 칸에 놓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럼 장기는 무엇일까? 이렇게 특정한 칸에서 말이 움직이며 게임이 진행되는 방식은 ‘격자에서 이동(Grid Movement)’이라고 부른다. 다음에는 격자에서 이동 시스템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글 현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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