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보드게임 100 - 라비린스

멋진 아이디어로 구현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로 속에서 보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자.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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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보드게임은 10만 종에 이른다. 수없이 많은 게임이 탄생해, 어떤 것들은 잊히고 어떤 것들은 명작으로 남는다. 이 코너에서는 보드게임의 명작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 100선을 뽑아 소개한다.
 
 
 
미로 찾기는 아주 오랫동안 대중에게 사랑 받아온 놀이 방식이다. 그림으로 표현된 미로 찾기 문제는 신문이나 잡지의 한 페이지에 자주 등장하며,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에서 참가자들이 미로로 된 세트장에 도전하는 광경도 때때로 볼 수 있다. 아예 미로를 주제로 만들어진 테마파크나 공원도 있을 정도다. 마법이나 신비를 다루는 영화나 만화 등 창작 매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대개는 주인공의 행동에 따라 길이 바뀐다거나 바닥이 꺼지거나 천장이 내려오는 등의 장치가 있어 안 그래도 골치 아픈 미로 탐험을 더 힘들게 한다. 보드게임 <라비린스>에서 우리가 탐험할 미로 역시 그런 골치 아픈 미로다.
 

플레이어들은 모습을 계속해서 바꾸는 미로 속을 돌아다니며 보물을 찾는 마법사들이 된다.
 
 
 
<라비린스>는 미궁 속의 어지러운 길을 더듬어 나가며 보물을 하나씩 찾아다니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마다 찾아야 하는 보물이 다르고, 보물이 묻힌 장소도 다르다. 목적이 다들 다르니 서로서로 도와가며 보물을 찾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일이 그렇게 되질 않는다. 한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미로가 바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보물을 코 앞에서 놓칠 수 있다. 그러니 혼자서 최대한 빨리 보물을 찾아내고, 미로를 빠져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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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마다 모습이 바뀌는 미로 속에서 보물을 찾아야 한다.
 
 
게임을 시작하면 24개의 보물이 표시된 24장의 카드를 플레이어 수만큼 나누어 각자에게 준다. 플레이어에게 분배된 카드의 보물이 바로 그 플레이어가 찾아야 할 보물이다. 플레이어들은 가지고 있는 카드 중에서 한 장만 보면서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 그 카드에 표시된 보물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면 카드를 공개해 맞는 보물을 찾았음을 증명하고, 다시 한 장의 카드를 뽑아 새로운 보물을 찾아나가는 식이다.
 

가지고 있는 보물 카드를 확인하고, 타일을 밀어넣어 미로의 구조를 바꾼다.
 
자기 차례에는 먼저 미로의 가장자리 중 한 곳을 선택해 길 타일을 밀어 넣는다. 그러면 밀어 넣은 방향을 따라 그 줄의 길 전체가 바뀌게 되는데, 이 선택에 의해 미로의 구조가 때로는 미세하게, 때로는 크게 바뀐다. 밀어 넣은 방향에 플레이어의 게임말이 있을 경우에는 게임말도 함께 이동한다. 그 결과 보물을 잘 찾아가던 게임말이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순간 이동하거나, 혹은 단번에 보물이 있는 발치로 접근하기도 한다. 만약 게임말이 게임판 바깥으로 떨어졌다면, 이번에 밀어 넣은 길 타일 위에 올려놓는다. 미로를 움직이고 나면 이제 자기 게임말을 움직여야 한다. 게임말은 현재 위치에 이어진 길을 따라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 이동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도 상관없으며, 다른 말이 이미 있던 자리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미로의 구조를 바꾼 뒤, 찾아야 할 보물이 있는 칸으로 움직이면 보물 찾기 성공!
 
이렇게 미로를 움직이고 게임말을 움직이다가 자기가 찾아야 할 보물 위치에 도착하면, 그 보물 카드를 공개하고 새로운 보물을 찾아 떠나야 한다. 찾아야 할 보물을 다 찾았다면, 마지막 목표인 미로 탈출을 위해 출발 칸으로 돌아와야 한다. 보물을 모두 찾고 출발 칸으로 제일 먼저 돌아온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자기 차례에 하는 일이라고는 길 타일을 밀고, 게임말을 움직이는 것이 전부이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로가 게임을 역동적으로 만들어준다. 미로가 바뀔 때마다 누군가 크게 낭패를 보거나,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잡게 되는 등 한 사람 한 사람의 차례마다 모든 사람의 명운이 바뀐다. 모든 사람의 차례에 모든 사람이 반응하게 만드는 훌륭한 파티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타일을 밀어넣을 수 있는 곳들
 
움직이는 미로라는 멋진 소재와 플레이어의 운명이 계속 바뀌는 면모를 제외하고 보아도, 게임을 잘 들여다보면 실제로 게임을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깨알 같은 재미 요소가 촘촘하게 들어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레이싱 게임 요소다. 이 게임에서의 레이싱이란 단지 미로를 따라 목표물로 돌진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주, 즉 이어달리기의 성격이 있다. 이 특성은 한 번에 하나의 보물만 목표로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생기는데, 하나의 카드를 뽑아 경주를 시작하고, 목표에 도착하면 새로운 목표를 향해 거기서부터 경주를 시작하는 방식이 이어달리기의 바톤 터치와 같은 역동성을 부여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다음 카드가 무엇인지 미리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주자마다 그때그때 뽑기로 코스를 결정하는 셈이다. 주자가 달릴 코스는 아주 먼 코스일 수도 있고 아주 가까운 코스일 수도 있다. 이 운 요소가 한 번의 경주를 마치고 새 경주를 시작하는 순간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준다.
 

타일을 밀어넣어 미로를 바꾼 뒤, 녹색 마법사가 움직일 수 있는 곳들.
 
운과 실력이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도 아주 이상적으로 분배되어 있다. 실력이 개입할 구석이 대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게임에는 확률 요소가 있다. 우선 타일을 밀어 넣을 때 그다음 상대의 수를 예측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는 분명히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 여기에 더해 차례마다 이동을 마치는 지점의 선택도 확률의 영역이다. 상대의 선택에 따라서 다음 차례에 내 출발 지점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후반부로 갈수록 추리의 요소가 개입하면서 실력의 영향이 다소 커지기도 한다. 미로 타일에는 정확히 24개의 보물이 공개되어 있고, 보물 카드도 24장이다. 보물 하나마다 카드 한 장이라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이 지금 가고자 하는 목표가 어디인지 추측하기 점점 수월한 조건이 되므로, 상대를 견제하거나 혹은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조금 유리해진다. 물론 확률은 100%가 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내 예측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플레이어 수가 많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훌륭한 실력을 발휘하고도 운 때문에 지는 일은 수시로 일어난다. 하지만 그렇게 패배했더라도, 다음 게임에서 운이 다라며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실력을 최고로 발휘하려 할 것이다. 플레이 중엔 최대한 실력을 발휘하게 하면서도, 승패에 운이 개입한다는 점은 가족 게임으로서는 큰 미덕이다.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게임을 할 때, 서로 봐주지 않으면서도 즐거운 승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시된 보물을 찾은 보물 카드는 자리 앞에 모아놓는다.
 
이 신선한 느낌의 보드게임은 놀랍게도 20세기에 만들어졌으며, 현재까지도 이렇다 할 라이벌을 찾을 수 없는 미로 게임의 베스트셀러다. <라비린스>는 1986년에 독일의 심리학자인 막스 코베르트 작가가 처음 만들었으며, 140년 전통의 보드게임 대표 기업 라벤스부르거를 통해 출시했다. 막스 코베르트 작가 자신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부터 미로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로가 그가 집착하는 주제였다. 실제로 그는 회전문이나 움직이는 벽 등 다양한 장치가 있는 미로를 설계하고 모델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당시의 작업과 고민이 훗날 <라비린스>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라비린스를 만든 막스 코베르트 작가
 
막스 코베르트 작가는 1973년에 <콜로미노(Colomino)>를 통해 보드게임 작가로 데뷔한 이후, 움직이는 미로를 사용한 보드게임 아이디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여러 가지 미로 모델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그 모델들은 보드게임으로 만들기엔 지나치게 정교했기에, 그 변화무쌍함을 살리면서 조작을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에 이르러 <루빅스 큐브>를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루빅스 큐브>는 모든 면이 각각 3×3개의 정사각형 조각으로 나뉜 정육면체 큐브로, 면을 하나씩 돌리면서 전체의 모양을 맞추어나가는 퍼즐이다. 막스 코베르트는 처음에 이 <루빅스 큐브>의 ‘돌린다’라는 발상에 착안했다. 그가 이 발상에서 처음 만든 것은 표면을 돌릴 수 있는 구 형태의 입체 미로였는데, 만들고 보니 여전히 너무 복잡했다. 그래서 입체를 포기하고 평면상으로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기로 했다.
그렇게 만든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원반을 사용한 것이었다. 원반에는 바깥면으로 이어지는 길이 그려져 있고, 미로 위에 놓고 돌릴 때마다 미로 전체가 변화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 시도도 금세 좌절하고 마는데, 이것은 그가 아직 보드게임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던 탓이기도 했다. 처음 이 아이디어를 생각했을 땐 수많은 고찰 끝에 찾아낸 뛰어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비슷한 아이디어의 게임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만들어진 미로는, 그가 생각하는 미로의 이미지와는 어딘가 달랐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 좌절감에 빠져 있던 중, 갑자기 어느 순간에 깨달음이 찾아왔다. 원이나 구를 사용해 돌린다는 발상에서 벗어나, 평면에서 사각형을 일렬로 움직이는, 1차원적 이동 방식이 오히려 더 많은 변화를 실현하기에 좋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즉시 그는 7×7 정사각형 패턴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그 위에 미로를 그려 테스트를 시작했다. 그 프로토타입은 그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도 더 매끄럽고 화려하게 움직이는 미로를 구현해 냈고, 그렇게 해서 <라비린스>가 탄생했다.
 

라비린스 시리즈
 
<라비린스>는 시장에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빠르게 자신의 영토를 늘려갔다. 이 게임은 세기를 넘겨서도 새로운 게임에 밀려나거나 주춤하지 않았고,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60개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지역에 보급되었다. 그 후로도 이어진 긴 전성기 동안 수많은 파생작을 낳았고, PC와 콘솔 등 비디오 게임 등으로도 이식되어 그야말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보드게임이 되었다.
 
 
글 김성일
 
수상 이력
2011년 봄 미국 부모의 선택 클래식 어워드 수상
2002년 일본 보드게임 상 최고의 어린이 게임 부문 후보작
1988년 스웨덴 올해의 게임 최고의 가족 게임 부문 수상
1986년 독일 올해의 게임상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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