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참을 수 없는 추리의 즐거움

반복 가능한 추리 게임의 세계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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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들, 전 세계를 사로잡다

 

전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시달리던 2021년 10월, ⟨워들(Wordle)⟩이라는 단어 퍼즐이 온라인에 공개되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문제를 풀고, 하루에 한 번씩만 도전할 수 있는 이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알파벳 다섯 개로 이루어진 단어를 6번의 시도 안에 맞히면 된다.

 

단어를 입력하면 그 단어를 이루는 알파벳 중 정답에 포함된 글자를 알려주며, 위치까지 일치하면 녹색으로, 위치가 다르다면 노란색으로, 나머지 글자는 회색(초기 버전에서는 검은색)으로 표시된다.

 

단어를 입력할 때마다 개별 글자와 정답의 관계가 드러나기 때문에, 주어지는 모든 정보가 단서가 된다. 이렇게 범위를 좁혀 가면서 추측하는 과정의 긴장감과 최종적인 성취감이 상당하다.

 

 


뉴욕 타임즈가 워들을 인수하면서 발표한 이미지.
GAMES라는 정답을 기준으로, 6번의 기회가 사용되었다.

 

 

개발자인 조시 워들은 낱말 풀이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이 게임을 완성했다.

 

하지만 최초에 확보한 5글자 단어 12,000여개를 그대로 정답으로 쓸 수는 없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도 생소한 단어들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인 팔락 샤가 이 단어 목록에서 일반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수준의 단어를 골라내는 작업을 맡았다. 이렇게 2,500여개의 단어가 선별된 이후 워들이 온라인으로 공개되었다.

 

초기에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곧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듬해 2월에 뉴욕 타임스에 인수되었으며, ‘워들(wordle)’은 결국 2022년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로 기록되기에 이른다.

 

 

2022년, 구글의 전세계 검색어 1위는 WORDLE이 차지했다.
Google 올해의 검색어 - Google 트렌드

 

 

사람들이 워들에 이끌린 것은...


플로리다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매튜 볼드윈은 ⟨워들⟩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모두가 힘겹게 버티고 있던 팬데믹 시기에 적당한 도전과 만족감을 제공했고, 하루에 한 번이라는 제약이 과한 콘텐츠 소모를 막았으며, 무엇보다도 풀이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공유할 수 있었던 점에서 사회적인 측면의 기여가 컸다고 분석한다.

 

문제를 풀고 나서 결과를 공유하면 색깔만 남는데, 이렇게 답을 공개할 염려 없이 자신의 풀이 양상만 업로드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공통된 콘텐츠를 향유하면서 팬데믹으로 심해진 고립감을 완화할 수 있었고, 결과를 비교하면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들여다보고 즐거워했다는 이야기다.

 

 


워들을 풀고 나면,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망칠 염려 없이 풀이 과정만 간단하게 공유할 수 있다.

 

 

핵심은 정답이 공개되는 순간의 쾌감이다


하지만 볼드윈의 설명에서 가장 먼저 제시되는 설명, 그러니까 ⟨워들⟩이 제공하는 본질적이면서도 가장 기초적이고 직접적인 감정은 이 게임을 통해 경험하는 ‘아하! 모먼트’다.

 

유레카 효과라고도 불리는 이 순간은 퍼즐이 풀리고 해답이 공개되면서 찾아오는 급작스러운 깨달음과 통찰의 경험을 가리킨다.

 

급격한 유창성의 유입(sudden influx of fluency)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심리적 체험은 사실 ⟨워들⟩에만 적용되는 사항이 아니라 퍼즐이나 추리와 같이 문제 풀이 과정이 수반되는 장르에 공통되는 특징이다.

 

 


정말로 이해 못 함.

 

 

셜록 홈즈에서 명탐정 코난까지

 

이렇게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의 심리적 쾌감을 극적으로 활용해 온 전통적인 장르는 추리 소설이다.

 

작가가 수수께끼를 내고 독자가 사건을 푸는 이 장르의 기본 구조는 1841년 발표된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으로 시작해, 1887년부터 1927년까지 연재가 이어진 ⟨셜록 홈즈⟩ 시리즈로 이어진다.

 

펄프 픽션이 범람하던 1920년대는 탐정 소설의 황금기라고 일컬어지는데, 녹스와 반 다인 등이 탐정 소설이 지켜야 하는 여러 원칙을 제시한 것도 이 시기다.

 

 


모르그 가의 살인에서의 오귀스트 뒤팽(왼쪽),

실버 블레이즈에서의 셜록 홈즈와 존 왓슨(오른쪽)

 

 

이후에는 추리보다는 소설적인 완성도에 집중한 레이먼드 챈들러와 같은 하드보일드 작가들이 주류가 되면서 이러한 구도가 느슨해지지만, 1990년대 전후로 일본에서 등장한 신본격(현대본격)이라는 흐름이 퍼즐과 추리를 다시 중심으로 가져온다.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과 같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탐정 만화도 이러한 흐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명탐정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

 

 

영원히 반복되는 추리를 즐기고 싶어!


이렇게 이야기 속에서 제시되는 증거와 수수께끼는 대부분 상황과 맥락에 의존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할 수는 있지만 재현은 불가능하다.

 

그런 탓에 추리 소설의 이러한 구조를 여러 번 즐기는 것이 기본이었던 고전적인 보드게임에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추리를 게임으로 구현하기 위해 주로 채택된 방식 중 하나는 정답이 아닌 정보를 참가자들 사이에 흩어 놓는 것이다.

 

즉, 정답일 수 있는 가능성을 카드로 만든 다음, 그중 하나를 무작위로 선택해 숨기고 정답으로 만든다.

 

숨기고 남은 나머지 정보를 참가자들에게 분배한다. 그러면 각자가 들고 있는 정보는 자연스럽게 정답이 아닌 것으로 소거되기에, 자신의 정보를 최대한 숨기면서 상대의 정보를 최대한 캐내는 방식으로 가장 먼저 정답에 도달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성립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버전의 클루가 존재한다.
사진은 FC바르셀로나 버전.

 

 

추리 게임의 영원한 고전 - 클루

 

어쩐지 익숙하게 들리는가?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은 ⟨클루⟩다.

 

이 게임은 범인과 범행 장소, 범행 도구라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맞히면 승리한다.

 

주사위를 굴려 나온 결과만큼 자기의 말을 움직인 다음 들어간 장소에서 그곳에서 일어난 일(범인과 범행 도구)을 추리할 수 있다. 그러면 오른쪽 사람부터 시작해서 추리를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지 확인한다.

 

 

스칼렛 플레이어가 '그린'이 '욕실'에서 '권총'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추리한 순간.

이 셋 중 하나라도 해당하는 카드가 누군가에게 있다면 이 추리는 틀린 것이 된다.

 

 

반박할 정보가 없다면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지만, 가능하다면 반드시 반박해야 하고, 해당하는 정보가 여럿이라면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

 

이렇게 반박되는 정보는 추리한 사람에게만 전달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추리 자체는 공개되기 때문에 누가 어떤 단서를 들고 있는지는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정보의 질에는 차이가 있지만, 다른 사람의 추리와 반박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린' 카드를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가 그 카드를 추리를 한 플레이어에게 건네면,
추리를 한 플레이어는 용의자 목록에서 '그린'을 삭제할 것이다.

 

 

셜록 홈즈를 창조해 낸 아서 코난 도일은 ⟨네 사람의 서명⟩에서 셜록 홈즈의 말을 빌어 “불가능한 결론을 다 제쳐놓고 나면, 아무리 기이한 일이라 해도 남은 것이 진실일 수 밖에 없다.”는 명언을 남긴다.

 

이렇게 불가능성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연역 추리 방식은 ⟨클루⟩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사건을 일으킨 고양이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하는 캣 크라임. 여러 단서를 조합해 연역적으로 추리하는 방식이다.

 

 

정보가 곧 자원이다 - 다빈치 코드


이 구조의 핵심만 가져온 것은 의외로 ⟨다빈치 코드⟩다.

 

0부터 11까지 숫자가 표시된 타일을 몇 개씩 가져와 오름차순으로 배치한 다음, 상대의 타일을 모두 맞히면 이기는 이 게임은 소거법을 통한 경쟁적 추리라는 아이디어를 간결하지만 착실하게 구현한다.

 

자기 차례가 되면 타일을 하나 가져온 다음, 공개되지 않은 상대 타일을 하나 선택해 추측해야 한다.

 

맞힌다면 계속 추측할 수도 있고, 아니면 차례를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틀린다면 직전에 가져온 타일을 공개해야 하는데, 타일은 반드시 규칙에 따라 배치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보가 드러나는 결과로 이어진다.

 

 

타일은 항상 오름차순을 이루기에 이제 막 가져온 하얀색 1이 맨 왼쪽에 놓일 것이다.

타일의 배열 자체가 정보이며, 추리의 근거가 된다.

 

 

그렇기에 제한된 기회 속에서 정보라는 자원을 관리해야 하는 이 게임은 본래 의도했던 교육적인 가치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게임 자체의 재미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층 더 깊은 추리를 담고 있는 ⟨다빈치 코드 플러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3가지 색깔 타일을 사용해 보다 깊은 추리를 즐길 수 있는 다빈치 코드 플러스. 변형 2인 게임이나 팀플레이 등 다양한 게임 방식도 지원한다.

 

 

추리하지 않는 사람이 필요해! -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

 

⟨클루⟩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정답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답을 알게 되기에 정답을 맞히는 시도를 각자 한 번밖에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가장 쉬운 접근은 추리에 참가하지 않는 제 3자를 추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면 더 좋을 테니, 애초에 그 사람이 정답을 결정하고 나머지 사람이 추리를 하는 형태의 게임이 제작되기도 했다.

 

즉, 단서를 흘리면서 도망치는 1명과 추리를 통해 범인을 잡아야 하는 다수의 추적자 사이에 대결 구도가 펼쳐지는 이러한 부류의 게임은 ⟨스코틀랜드 야드⟩와 ⟨드라큘라의 분노⟩를 거쳐,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와 ⟨화이트홀 미스터리⟩로 이어진다.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에서는
한 명이 런던의 전설적인 살인마인 잭 더 리퍼를 맡고
나머지가 경찰이 되어 잭을 체포하거나 은신처를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앱을 써보면 어떨까? - 행성 X를 찾아서


하지만 디지털 기기의 보급으로 제3자의 개입 없이 동일한 비공개 정보를 함께 활용하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또다른 방식의 변주가 일어난다.

 

태양계 내에 존재 가능성만 추측되고 있는 9번째 행성을 탐색하는 게임인 ⟨행성 X를 찾아서⟩가 대표적이다.

 

일정한 구역으로 나누어진 밤하늘에 각종 천체가 배치되는데, 플레이어들은 몇 가지 행동을 통해 이러한 천체 각각의 위치를 파악하는 동시에, 천체들 사이에 적용되는 다양한 배치 규칙이나 패턴을 확인해 직접적으로는 관측되지 않는 행성 X의 위치를 알아내야 한다. 

 

 

행성 X를 찾아서는 앱을 통해 추리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판정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한 구역에 위치한 천체를 확인하는 목표 행동이나 지정한 범위 내에 특정한 천체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관측 행동, 두 가지 천체 사이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연구 행동 등 여러 방식으로 다양한 비공개 정보에 접근하게 된다.

 

즉, 하나의 정답 조합만을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비공개 정보를 여러 겹으로 잘게 쪼개어 그 과정에 놓인 다양한 정보를 조합해서 최종적인 답을 추측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초심자와 숙련자가 함께 경쟁할 수 있도록 시작 정보에 차이를 줄 수도 있어 보다 다층적인 접근이 가능해진다.

 

 



행성 X의 위치를 가장 먼저 찾아내는 것은 누구?

 

 

정보를 쥔 소수 집단과 무지한 대중 사이의 대결 - 마피아 게임

 

비공개 정보를 일부에게만 주고, 정보의 흐름을 통해 추리하도록 만든 게임도 있다.

 

1986년 모스크바 대학교의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던 드미트리 다비도프가 만든 마피아 게임은 애초부터 ‘정보를 쥔 소수 집단과 정보가 없는 대중 사이의 대결’로 요약된다.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틀은 공개 토론을 통해 모두가 희생자를 결정하는 낮 단계와 정체를 숨긴 소수의 마피아들이 추가로 희생자를 결정하는 밤 단계를 통해 서로의 숫자를 줄여나가는 두 집단의 대결 구도다.

 

 

마피아 게임을 계승 발전시킨 후계자들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의 사회적 반응을 중심에 두는 이 구조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점차 다양한 역할이 추가되고, 늑대인간 테마가 입혀지면서 ⟨타불라의 늑대⟩나 ⟨밀러스 할로우의 늑대인간⟩과 같은 제품이 만들어진다.

 

국내에서는 아서왕의 성배 탐색을 주제로 하는 ⟨레지스탕스 아발론⟩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보드게임만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어몽 어스⟩나 ⟨구스구스 덕⟩과 같은 디지털 게임이 한창 유행을 타기도 했다.

 

 



어몽 어스의 긴급 회의 소집 장면.
우리 중에 임포스터가 있다!

 

 

"진짜" 추리가 가능하다고?

 

이렇게 참가자들 사이에 단서를 분배하고, 비공개 정보를 각자가 통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일정한 절차를 통해 정보를 무작위로 생성하고 관리할 수 있기에 반복적인 추리가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몇 번이든 즐길 수 있어야 했던 고전적인 보드게임으로 성립하면서, 추리의 재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이 창안된 것이다.

 

하지만 정답이 될 수 있는 정보의 목록이 정해져 있고, 소거법을 통해 오답을 걸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추리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이야기 구조나 반전에서 오는 묘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누군가는 방법을 찾았고, ‘레거시 게임’을 통해 일회성 경험에 관대해진 소비자층이 등장하면서 반복성을 배제한, ‘진짜’ 추리가 가능한 보드게임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도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다른 지면에서 다루도록 하자.

 

 

 

 

 

글 김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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