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라타

정어리와 통조림 공장, 그 경영의 담백한 맛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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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0세 이상 | 1~4명 | 20~45분

 

 

"정어리와 통조림 공장, 그 경영의 담백한 맛"

 

 

이 게임의 제목 ⟨라타⟩는 포르투갈어로 주석을 뜻하며, 양철로 만든 통조림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다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생선 통조림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생선은 장기 보존이 어렵고, 대서양 연안에서 잡히는 엄청난 양의 정어리와 고등어는 통조림 기술이 발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전세계로 수출된다.

 

이렇게 시작된 통조림 산업은 포르투갈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생선 통조림과 카레

 

 

통조림의 수요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급격히 늘어난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거의 마지막까지 중립을 지켰던 포르투갈은 주축국과 연합국 양쪽 모두에게 통조림을 공급한다.

 

이후 심각한 불황으로 침체를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높은 품질은 물론이고 심미성까지 갖춘 패키지 디자인으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되찾고 있다.

 

 

생선 통조림

 

 

⟨라타⟩는 시간을 조금 되돌려, 새로운 밀봉 기계가 도입되면서 너도나도 통조림 산업에 뛰어들던 20세기 초의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한다.

 

설비를 갖추고, 통조림을 생산하고, 판매하여 점수를 얻고 설비를 확충하는 공장 운영의 다양한 측면들을 아기자기하게 담으면서, 이미 익숙한 매커니즘을 다양하게 활용해 밀도 있는 게임을 완성했다.

 

하나하나를 떼어보면 복잡하지 않은 구성이지만, 전체를 합쳐 보면 제법 높은 밀도를 가지고 있다.

 

 

이제 막 게임이 시작된 모습

 

 

전체적인 그림은 간단하다.

 

먼저 차례 순서를 결정하고, 이 순서에 따라 펼쳐진 설비를 가져와 공장을 개편한다. 그런 다음 상품을 생산하고 시장에 판매한다. 마지막으로 점수 카드를 구매하면 라운드가 끝난다.

 

이런 라운드를 여섯 번 반복하면 게임이 끝나고 점수가 높은 사람이 이긴다.

 

 

다양한 조건을 가진 점수 카드들. 어떤 점수 카드를 모으냐에 따라 점수 획득 방법이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생산 설비의 확보와 배치다.

 

공장에 어떤 설비가 어떤 순서로 갖춰져 있느냐에 따라 상품의 종류와 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하는 설비를 가져오려면 경쟁자들보다 먼저 행동해야 한다.

 

 

게임이 시작될 때엔 정어리 통조림 하나 밖에 못 만들지만, 설비를 갖춤에 따라 품목과 수량이 늘어난다.

 

 

⟨라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딜레마를 던진다.

 

모두에게 동일한 행동력을 주고, 순서 결정에 사용할 양을 각자 정한다. 그리고 동시에 공개한다.

 

남보다 많이 쓴 사람이 먼저 행동한다. 물론 남은 행동력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많아진다. 하지만 아주 많지는 않아서, 다 쓰지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쓸 만큼만 딱 남기고 나머지로 원하는 설비를 가져오면 좋겠지만, 나 혼자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다.

 

 

라운드마다 행동력을 사용하는 순서 결정 경매를 거친다. 앞으로 모든 행동은 가장 많은 행동력을 소모한 플레이어부터 시작한다.

 

 

모두가 공개된 설비를 살펴보고, 행동력 입찰을 통해 순서를 정하면 차례대로 설비를 가져온다.

 

이때 주의할 점은 가져온 설비는 반드시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2장이 묶여 있는 경우도 있어서 꽤 골치 아픈 경우도 생긴다.

 

라운드마다 반드시 하나는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완벽한 조합으로 설비를 구성했다고 해도, 오래 지나지 않아 손을 대야 한다.

 

 

설비 카드 2장을 가져왔다면, 이들 모두 공장에 배치해야만 하며, 배치할 때 돈을 내야 하는 칸도 있다.

 

 

공장은 넓지 않고, 설비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더군다나 설비를 배치할 때 돈을 내야 하는 곳도 절반 이상이다.

 

설비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생산할 수 있는 품목과 숫자가 달라지는 점도 상당한 변수다.

 

기존에 있던 설비를 덮어버릴 수도 있지만, 앞으로 쓸 수 없으니 현명한 선택이 요구된다.

 

 

정어리를 가지고 통조림을 만들자.

 

 

설비 배치가 끝났다면 이제 돌아가면서 생산을 해야한다.

 

생산에는 행동력이 필요하다. 작동시키는 설비마다 행동력을 지불해야 하니, 남은 행동력이 많으면 많은 설비를 가동할 수 있다. 설비는 라운드마다 한 번씩만 쓸 수 있으니 설비 숫자도 점점 중요해진다.

 

 

물론 게임에선 행동력과 설비만을 사용해 통조림을 만든다.

 

 

이렇게 설비를 가동해 생산한 상품은 곧바로 시장에 판매해야 한다. 물론 판매에도 행동력이 필요하다.

 

시장 상황 역시 처음부터 공개되어 있으니 크게 불합리하지는 않지만, 잠재적인 거래처가 줄어가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다.

 

 

국내 시장과 국제 시장에서 어떤 통조림을 원하는지를 나타내는 시장 카드들

 

 

그렇지만 이 단계에는 느린 것도 이점이 있다. 시장 카드의 빈칸을 모두 채워 완성한 사람은 그 시장 카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판매하지 못하고 남는 상품은 대개 버려지고, 시장에 판매하는 상품마다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 기회를 주더라도 보통은 파는 것이 이득이 된다.

 

물론 카드에 그려진 국기 하나가 1점이고, 같은 국기가 2개라면 추가로 1점을 얻기 때문에, 카드를 많이 완성할수록 얻는 점수가 많아진다.

 

 

행동력을 사용해 해외 시장에 통조림을 팔자. 마지막 칸을 채우면 해당 카드를 가져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점수를 얻는다.

 

 

여기까지 끝나면 마지막으로 돈을 내고 점수 카드를 구매할 기회가 주어진다.

 

점수 카드 역시 처음부터 공개되어 있고, 차례 순서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기회는 분명히 균등하지 않다.

 

 

플레이어가 얼마나 잘 운영했는지를 평가할 기준이 될 점수 카드들

 

 

⟨라타⟩가 던지는 질문은 간결하다.

 

라운드마다 최대로 채워지는 ‘행동력’이라는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모두에게 주어진 같은 기회를 조금 더 최적화된 설비와 더 많은 상품, 보다 많은 돈과 점수로 변환하는 상대적인 효율성. 그것이 ⟨라타⟩를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이다.

 

 

 

 

포르투갈 제작사인 피타고라스는 리스본의 오래된 카페들을 배경으로 삼은 ⟨카페 엑스프레소⟩로 ‘작은 상자 안의 큰 게임’이라는 싱쿠쿠이나스(5QUINAS) 컬렉션을 시작했다.

 

이 컬렉션의 두 번째 작품인 ⟨라타⟩는 포르투갈의 영혼을 담은 특산품인 정어리 통조림을 소재로, 자국의 문화와 역사를 게임에 깊이 녹여내는 데 또 한번 성공했다.

 

 

시리즈의 첫 번째 게임인 카페 엑스프레소

 

 

다양한 창작물이 그렇듯이 보드게임 또한 현실의 특정한 측면을 포착하여 하나의 체계 속에서 재구성하여 전달한다.

 

⟨라타⟩가 주목한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신의 조건을 바탕으로, 경쟁자를 분석하고, 상황 변화를 예측하며, 때로는 대담한 도전을 통해 주어진 환경 속에서 높은 성취를 일구어내는 경영의 방식이다.

 

아기자기한 구조 속에 밀도 높은 경영의 묘미를 담은 ⟨라타⟩와 함께, 정어리 통조림의 세계에 뛰어들어보자.

 

 

 

 

참고 삼아 말해두지만, 올리브유에 담긴 정어리 통조림은 참치 통조림과 맛에서 큰 차이가 없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덜 비리고, 더 담백하다.

 

 

 

글 김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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